작성일 : 09-07-13 11:17
[산업의 허리를 키우자] (하) 항아리형 산업모델을 만들자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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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미래성장 버팀목' 육성을

경쟁력 강화에 불리한 피라미드형 산업구조 대신

균형잡힌 '대기업-중견-中企' 비례구도 만들어야

정부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 모든 방안 검토중"

 

신경립 기자 klsin@sed.co.kr1

#1. 경기 안산에 위치한 에스아이플렉스는 초박형 전자제품의 핵심부품인 연성인쇄회로기판(FPCB) 시장에서 세계 5위권에 드는 글로벌 플레이어다. 21년 전 작은 벤처기업으로 출발, 올해 매출 3,000억원을 자신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이 회사의 제품을 쓰는 국내 고객사는 삼성전기ㆍLG전자 등 12개사. 생산 외주를 맡았거나 금형 등 생산의 툴을 제작하는 중소 협력업체는 130여개사에 달한다. 이 회사의 탄탄한 기술력과 빠른 성장세는 제품을 납품 받는 대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중소 협력사들이 안정된 경영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2. 지난 1989년 자본금 5,000만원의 영세업체로 시작한 디지털 셋톱박스 생산업체 휴맥스는 설립 20년이 지난 지금 중견기업을 넘어 대기업을 향한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창업 초기 1억원대에 불과했던 매출은 올해 8,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비중이 80% 이상에 달해 전세계에서 휴맥스 제품이 공급되지 않는 지역은 중국과 아프리카 정도. 회사의 가파른 성장에 발맞춰 직원 수는 11명에서 740명으로 60배 넘게 늘어났고 휴맥스와 거래하는 중소 협력업체 수는 현재 400~500개에 달한다.

 

조병선 기은경제연구소장은 부품소재업의 예를 들며 “조립을 하는 대기업과 1차 협력사인 중견기업, 23차 협력사인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산업구조에서 중견기업 육성은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과 대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모두 도움이 된다”며 “허리인 중견기업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강조했다.

 

튼튼한 중견기업은 중장기적인 한국 경제 성장력의 뒷받침이 되는 산업구조 개선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견기업연합회는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피라미드형 기업분포는 편익 수혜자가 대기업에 한정되므로 경제 생태계 전방의 인센티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대체할 방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중견기업이 튼실한 층을 이루는 완만한 항아리형 산업모델을 형성하는 것이다. 박정수 에스아이플렉스 부사장은 “10년 뒤 나라경제를 이끌 대기업이 되는 것은 결국 중견기업”이라며 “정부가 중견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파이를 키우면 중장기적인 대기업 육성효과는 물론이고 중견기업의 하부 구조를 형성하는 중소기업들이 커지는 결과를 낳아 전체적인 산업구조가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구조는 ‘항아리형’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과거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에 따르면 1994년 중소제조업체 56,000여곳 가운데 10년 뒤인 2003년 종업원 300인 이상의 규모를 갖추게 된 기업은 0.13% 75. 과거 수차례 중견기업 육성에 관한 논의는 있었지만 중소기업으로 집중돼 있는 정부 지원의 ‘분산’과 중견기업 지원에 대한 명분 논란으로 번번히 무산돼 피라미드형 구조는 갈수록 심화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정부도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고 건전한 항아리형 산업구조를 만들기 위해 중견기업 육성방안 마련에 다시 나섰다. 하지만 이를 위한 방안에 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박상문 강원대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중견기업 경쟁력 강화방안’ 연구를 통해 ▦글로벌 중견기업 발굴 및 육성 ▦중소기업의 대기업 전환에 따른 규제 완화 ▦자발적 투자확대를 위한 조세지원 체제로 전환 ▦중견기업에 대한 조세지원 시스템 새롭게 구축 ▦산업구조 변화 위한 제도개선 등의 안을 제시한 바 있다.

 

반면 중견기업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을 늘리기보다 중소기업의 경쟁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건전한 항아리형 산업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ㆍ연구기관과 금융기관 등 기업 배후환경을 건전화하고 중소기업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끌어내는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혁신형 기업에 대해서는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에 이를 수 있도록 정부가 육성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육성방안을 추진 중인 지경부의 한 관계자는 “중견기업을 키우자는 공감은 있지만 방법론에서는 전문가들 간에 의견 차이가 크다”며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중견기업 육성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09/05/19 18:05:21 수정시간 : 2009/05/19 18:10:10